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탈린그라드의 성모 (문단 편집) == 작가 == [[헤센]] 주 [[카셀]] 출신의 로이버는 어릴 적 [[알베르트 슈바이처]]를 만나 큰 영향을 받았고, [[김나지움]]([[고등학교]])을 졸업한 뒤 [[개신교]] [[목사]]가 되기 위해 [[신학]]을 전공했다. [[신학교]] 졸업 후 목사로 목회 활동을 하면서 [[괴팅엔 대학교]]에서 [[의학]]을 배웠고, 틈틈이 [[취미]]로 [[유화(미술)|유화]]를 즐겨 그렸다. [[1938년]]에는 대학에서 [[박사학위]]를 취득하고 [[의사]] [[면허]]도 갖게 되었다. 1년 뒤 [[제2차 세계대전]]이 발발하자, 로이버는 독일군 [[육군]]의 야전 군의관으로 징집되었고 [[1942년]] 11월에는 [[스탈린그라드 전투]]가 벌어지고 있던 [[스탈린그라드]]로 발령받았다. [[소련군]]이 [[게오르기 주코프|주코프]]와 [[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|바실렙스키]]가 공동 입안한 대반격 작전인 [[천왕성 작전]]을 벌이며 [[독일군]]이 수세로 몰리던 시기였고, 로이버는 하루 12시간씩 전선에서 실려오는 수많은 부상병들의 [[수술]]을 집도하는 강도 높은 근무를 해야 했다. 하지만 그 처절한 와중에도 취미였던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는데, 물론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[[물감]]과 [[캔버스]]는 고사하고 [[연필]]도 부족했기 때문에 주로 [[숯]]조각을 주워다가 폐지에 그림을 그렸다. [[1942년]] [[크리스마스]]를 맞아 목사이기도 했던 로이버는 자신의 믿음을 담아 [[성모 마리아]]의 초상을 그렸다. 가로 105cm, 세로 80cm의 [[소련]] 지도 뒷면에 숯으로 그린 이 초상 우측엔 '[[빛]](Licht)', '[[생명]](Leben)', '[[사랑]](Liebe)'이라는 [[성 요한]]의 글귀가[* 요 1:4절 “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'''[[예수|이 생명]]'''은 사람들의 빛이라.(In ihm war das Leben, das Leben war das Licht der Menschen)"], 좌측엔 '1942년 포위망 속의 크리스마스(1942 Weihnachten im Kessel)', 그리고 하단엔 '스탈린그라드 요새(Festung Stalingrad)'라고 적혀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